기업들이 활용 가능한 경영권 방어수단, 해외보다 적어
자산 100대기업 중 8개사만 경영권 위협 대응수단 채택
[공감뉴스=현예린 기자] 지난 2020년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한진칼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가 최종 실패했다. 또 교보생명에 대한 사모펀드 어피니티의 적대적 M&A 공격 사례에서 교보생명의 재무적 투자자인 어피니티(지분 42.3%)가 회계법인과 공모해 실제 기업가치와 무관한 풋옵션 가격을 산정했다. 이는 재판 과정에서 회계법인과 사모펀드 간 공모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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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시.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
어피니티의 최초 매입가는 주당 20만원인데 회계법인과의 공모를 통해 산출한 풋옵션 행사 가격은 40만원→어피니티는 신창재회장측에 주당 40만원에 매입할 것을 요구했다. 어피니티측은 신창재회장 지분(36.9%)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동 매각해 경영권을 빼앗는 시나리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지배구조 위기 발생시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 사례다.
이런 가운데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자산 상위 100대 기업(금융사 포함)의 정관을 분석한 결과 불과 8곳에서만 정관에 경영권 방어 조항을 채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입한 방어수단 역시 이사 해임 규정을 상법 특별결의 요건보다 조금 더 강화(‘이사 해임 요건 가중 규정’)하거나 시차임기제 정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의 경우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기존 이사를 해임하거나 정관 변경, 영업 양도 등이 이뤄지는데 기업들은 이에 대비해 정관에 결의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전경련 조사대상인 자산 상위 100대 기업 중 7개사는 정관에 이사 해임 결의를 ‘출석 주주 의결권의 70/100 이상’으로 하거나 ‘발행주식 총수의 1/2 이상’ 혹은 ‘발행주식 총수의 2/3를 초과’하도록 해 상법에서 정한 특별결의 요건을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이사진의 임기가 일시에 만료되는 것을 막는 방어 수단이 ‘시차임기제’다. 통상 이사 임기가 3년인데 이사 총원의 1/3씩 임기가 만료되도록 구성하면 경영권 공격세력이 주식 과반수를 매수해도 이사진 전체 교체가 어려워진다.
상장회사 이사진이 일시에 교체되는 경우가 드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시체임기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를 정관에 명시적으로 채택한 기업은 한 곳에 불과했다.
경영권 방어수단의 실효성도 낮아서 시차임기제가 있는 D사의 경우 지난 2006년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았을 때 별다른 대응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업들이 정관에 넣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들은 이사 해임 가중 요건, 이사 시차 임기제, 인수·합병 승인 안건의 의결정족수 가중 규정, 황금낙하산주 정도다.
이들 수단들은 단지 주주총회에서 안건의 가결(통과)을 어렵게 하거나 임원진들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것을 막는 정도이기 때문에 해외 경쟁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황금주 등 적극적 방어수단을 활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방어수단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도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방어수단을 새로 채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최근 한진칼이나 교보생명 사례처럼 지배구조에 일시적 균열이 발생했을 때 사모펀드들이 이를 틈타 기업 지배권을 위협하고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전경련 정관 분석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수단 부족이 확인된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준하는 방어수단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더(The)공감뉴스 현예린 기자(hyseong12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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