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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 밖 시각] “전세 매물 사라지고 가격만 급등, 누구를 위한 안정화인가”

현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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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칼, 공급은 실종..."10·15 대책이 시장 더 흔들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사진=서울시]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사진=서울시]

벌써 10·15 대책 시행 한 달여가 지났다. 전세시장이 급등하는 동안 정부는 아직도 ‘규제 강도’를 논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 대부분이 규제·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지만 시장은 정부가 기대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추가 지정, 갭투자 원천봉쇄, 대출 차단. 이른바 ‘삼중 규제’가 깔렸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전세금이 2~3%씩 뛰고 매매가격도 다시 우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최근 부동산 중개·분석업체 집토스의 분석에 따르면 대책 시행 후 한 달 동안 전셋값은 서울 2.8%, 경기 2.0%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1.2%)의 두 배다. 시장이 규제를 ‘투기 억제’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전세 공급 감소’ 신호로 읽었다는 의미다.

전세 매물이 사라진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는 갭투자를 투기와 동일시하며 규제를 강화했지만, 그 여파는 임대차 시장의 공급 축소로 직결됐다. 서울 주요 지역 전세 물량은 연초 대비 20% 가까이 빠졌다. 매매를 포기한 실수요자까지 전세로 몰리면서 전세시장은 순식간에 불균형 상태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 부작용이 가장 약한 고리, 즉 무주택 서민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양천구·강남권을 중심으로 두세 달 사이 전세금이 2~2억5000만 원씩 뛰었다. 교육·교통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부터 급등하면서 ‘주거 도미노’ 현상까지 나타났다. 서울 거주자는 외곽으로, 경기 거주자는 더 멀리 밀려나는 구조적 이동이다. 이른바 ‘턱 밑 전세난’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급은 충분히 계획돼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수도권 5년 135만 채 공급 방안, 지역 워크숍, 조직 신설 등 발표만 난무할 뿐 정작 언제·어디에·어떤 방식으로 공급되는지 시장이 이해할 수 있는 구체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KB 통계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5년 2개월 만의 최대치를 찍었다. 공급 신뢰가 무너지면 매수 심리가 강화되는 것은 경제학의 기초다.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은 정책의 질서다.

투기 억제를 목표로 규제를 강화하면, 그와 동시에 공급 확대의 신호를 명확히 보내 불안 심리를 잠재워야 한다. 하지만 10·15 대책은 규제의 강도만 높였고, 공급은 구상 단계에서 멈췄다. 규제를 강화하면서 공급은 미루고, 공급 불안은 실수요자의 매수 심리를 자극하고, 매매 통로가 막히면 전세로 몰리며 전셋값이 뛴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제를 더 얹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공급 신뢰를 되살리는 일이다. 실수요자를 옥죄는 대출 규제부터 풀고, 입주절벽이 예고된 지역에는 언제·어디에·얼마나 공급할지 정확한 로드맵을 즉시 공개해야 한다. 재건축·재개발을 멈춰 세운 각종 족쇄를 걷어내는 것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 시장이 원하는 것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이번에는 진짜 공급이 이뤄진다”는 확실한 신호다. 정부는 이 단순한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10·15 대책의 약발이 빠진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방향이 반대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요를 틀어막아 가격을 잡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실수요자들이 주거 사다리의 첫 단조차 밟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책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 사고를 키우는 조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겁주는 대책이 아니라 시장에 신뢰를 회복시키는 정책이다. 세입자는 더 이상 ‘풍선효과’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고, 무주택자는 규제의 틈바구니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만든 것이 규제 과소가 아니라 정책 신뢰의 붕괴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는 선택의 기로다. 잘못된 처방을 고수하며 전세난·매매난을 동시에 키울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 신뢰라는 기초를 다시 놓을 것인가. 정답은 이미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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