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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 밖 시각] 환율 폭등...주가 상승에 안도할 때가 아니다

현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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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부터 흔들린다...환율 쇼크의 첫 피해자, 원화 약세의 시대, 구조개혁 더는 미룰 수 없다

[사진=픽셀스]
[사진=픽셀스]

최근들어 원·달러 환율이 다시 '불안지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주 장중 1470원을 돌파하더니 시장에서는 “1500원 시대가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1450원 선이 일시적 급등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처럼 굳어지면서, 외환시장은 더 이상 ‘충격’ 단계가 아닌 ‘체념’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이같은 고환율이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달러 강세라는 국제 요인이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 경제 내부에 쌓여온 불안 요소들이 환율 상승을 증폭시키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를 미루고 있는 한국은행, 관세협상 후 대미 투자 부담,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확대, 외국인의 코스피 대량 매도 등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업종은 건설이다. 건설용 수입 중간재 물가지수는 지난 9월 기준 121.8로 1년 사이 4%가 뛰었다. 건설공사비 지수 역시 131.66으로 월간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재비·장비비가 끝없이 오르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상승하면 채산성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5년째 내리막인 업종에 ‘고환율’이라는 마지막 부담까지 얹힌 셈이다.

물가 역시 뚜렷하게 반응 중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2.4% 상승하며 두 달 연속 한은 목표치(2%)를 넘어섰다. 여행 수요 폭증 같은 일시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외식·가공식품 같은 생활물가가 3% 넘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전·월세 상승까지 겹치면서 실질 가계 부담은 더욱 심해졌다.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고, 다시 소비자물가에 불을 붙이는 악순환이 벌써 시작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과 대비되는 것은 정부의 태도다. 외환당국은 이례적 급등세에도 ‘면밀히 점검 중’이라는 원론적 언급에 머물고 있다. 과거 같으면 시장 안정 메시지나 구두개입이 잇따라 나왔을 상황인데, 지금은 정책적 존재감 자체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증시 반등에 기대 환율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된다.

환율은 경제 체력의 거울이다. 원화 약세가 고착되면 수입물가 상승과 금리 불안이 겹쳐 내수 침체는 더 깊어진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라는 ‘3고(三高)’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신뢰도와 직결된 사안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은 분명하다. 우선 외환시장 안정화에 대한 정부의 신속하고도 분명한 의지가 확인돼야 한다. 시장은 숫자보다 심리에 흔들리고, 심리는 정부의 대응 속도와 신호에 가장 먼저 반응한다. 뒤늦은 언급이나 원론적 설명으로는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다음으로, 생산성 향상과 구조개혁이라는 오래된 과제를 더는 미룰 수 없다. 현재의 원화 약세는 단순한 외부 충격이 아니라 우리 경제 내부의 체력이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경고일 수 있다. 그동안 ‘당장은 괜찮다’며 뒤로 미뤄왔던 문제들이 이제 환율이라는 거울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환율은 하루아침에 폭주하지 않는다. 조짐을 외면하고 대응을 늦출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리고 지금의 1470원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1500원 시대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경고다. 정부가 이 신호를 다시 한번 흘려보낸다면, 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큰 형태로 되돌아올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황을 멀찍이 지켜보는 ‘관찰자적 태도’가 아니다.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고 경제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뒤 내놓는 대책은 이미 효과를 반감시킨다. 골든타임은 이미 시작됐고, 더는 한순간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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